상세검색

검색버튼

릴레이 이벤트 등록

전화

공유

북악산 한양도성

  • 수정일 2018-04-06 16:00
  • 조회수 867
유의사항 : 신분증 원본 필참(성인은 각 개인 지참 필수,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반 하에 입산 가능)

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. 둘레는 약 17km, 면적은 59만 6812㎡이다.

1396년(태조 5) 축성되었다. 성벽은 백악(白嶽)·낙산(駱山)·남산(南山)·인왕산(仁王山)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. 길이는 영조척(營造尺)으로 5만 9500자, 이 길이를 천자문(千字文)의 97자(字) 구획으로 나누고 매자구간(每字區間) 600자로 하여 백악의 동쪽으로부터 천자(天字)로 시작되었다. 막음은 백악 서쪽의 조자(弔字) 구역으로 끝났다. 이 때 쌓은 성벽은 석성(높이 15자) 1만 9200자, 평지의 토성(土城:下廣 24자, 上廣 18자, 높이 25자) 4만 30자이며, 수구(水口)에는 홍예[雲梯]를 쌓고 좌우에는 석성을 축조하였다. 홍예 높이는 16자, 석성 등을 포함한 길이는 1,050자였다.

성에는 사대문(四大門 : 東―興仁之門, 西―敦義門, 南―崇禮門, 北―肅淸門)과 사소문(四小門:北東―弘化門, 南東―光熙門, 北西―彰義門, 南西―昭德門)을 냈다. 흥인지문(동대문)만은 옹성을 쌓았고 숙청문(숙정문)은 암문(暗門)으로 하여 문루를 세우지 않았다. 공사는 이렇게 끝났으나 남대문은 1396년, 동대문 옹성은 1399년 완성되었다.

1422년(세종 4)의 도성 수축공사 때 토성 부분을 석성으로 개축하였고, 성벽의 수리는 1451년(문종 1)에도 시행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참변을 당하였고 1616년(광해군 8) 일부가 수리되었다. 그 후 1704년(숙종 30), 1743년(영조 19) 부분적 보수를 하였으며, 1869년(고종 6) 동대문의 개축을 끝으로 도성의 수명이 다하였다. 현재는 삼청동 ·성북동 ·장충동 일대에 성벽이 남아 있다.


입장료 0

매일 09:00 - 16:00 하절기(3월~10월) 하산시간 18:00까지
매일 10:00 - 15:00 동절기(11월~2월) 하산시간 17:00까지
월요일 휴무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, 화요일 휴관


  • 전화
주소

서울 성북구 성북동

릴레이 이벤트

매체뉴스 바로가기

  • 조선일보
  • 한국경제TV
  • 농수축산신문
  • 시사뉴스
  • 건설경제
  • 숙박신문